1/14/2026
내 첫 잔, 그리고 블로그의 시작
서론|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술 블로그면 결국 술 좋아해서 하는 거 아니야?” 이 질문에 나는 늘 잠시 생각한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내 블로그 시작 이유는 단순히 술을 많이 마셔서가 아니라, 첫잔이 남긴 감정과 기억을 흘려보내기 싫었기 때문이다.
처음 술을 마셨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특별한 날도, 거창한 자리도 아니었다. 맥주 한 캔을 앞에 두고 괜히 긴장하던 그 순간, 쓴맛보다 먼저 느껴졌던 건 “아, 어른이 되는 건 이런 거구나”라는 막연한 감정이었다. 그 첫잔은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내 일상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준 계기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경험이 결국 이 블로그의 출발점이 됐다.
본론 ①|술은 취향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오해
많은 사람들이 술을 이야기할 때 브랜드, 도수, 가격부터 따진다. 위스키면 싱글몰트냐 블렌디드냐, 맥주면 라거냐 에일이냐 같은 구분 말이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술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느낀 건, 술의 본질은 스펙이 아니라 상황과 감정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위스키를 처음 마셨을 때를 떠올려보면, 향이 어땠는지보다 “왜 그날 그 술을 골랐는지”가 더 선명하다. 처음 위스키를 마셨던 날은 일이 유독 잘 풀리지 않던 평일 밤이었다. 누군가 추천해준 위스키 한 잔이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정리할 시간은 만들어줬다. 그래서 내게 위스키는 멋을 위한 술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는 술로 남아 있다.
이런 경험을 쌓다 보니 술을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게 바로 내가 술 블로그를 시작한 진짜 이유다.
본론 ②|맥주, 소주, 전통주… 술마다 다른 첫 인상
술마다 첫잔이 주는 인상은 확연히 다르다. 맥주는 부담이 없다. 처음 술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맥주는 늘 안전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한국주류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성인 음주 경험자 중 가장 먼저 접하는 술은 맥주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만큼 맥주는 입문용 술로 자리 잡았다.
반면 소주는 다르다. 소주는 친근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의 회식 문화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 그래서 소주의 첫잔은 종종 즐거움보다는 긴장과 함께 온다. “원샷 해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드는 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소주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사실 소주의 맛이 아니라, 소주와 얽힌 기억이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다.
전통주는 또 다른 영역이다. 막걸리나 증류식 소주를 처음 마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다르다”고 말한다. 나 역시 전통주를 처음 제대로 마셨을 때 익숙하지 않은 향과 질감 때문에 어색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배경과 만드는 방식, 지역 이야기를 알고 나니 술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술이야기를 할 때 항상 맥락을 함께 적는다.
본론 ③|술이야기를 기록하는 블로그의 의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가장 경계하는 건 술을 과하게 미화하는 것이다. 술은 분명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조심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서는 “많이 마시는 법”보다는 “어떻게 마셨는지”를 중심으로 쓴다.
실제로 독자 댓글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이 글을 보고 술을 더 마시고 싶어진 게 아니라, 천천히 마셔보고 싶어졌어요.” 그 문장을 보고 방향을 확신했다. 이 블로그는 술을 권하는 공간이 아니라, 술을 매개로 한 경험을 나누는 기록장이라는 것을.
결론|첫잔은 지나가지만, 기록은 남는다
지금도 새로운 술을 마실 때면 첫잔 앞에서 잠시 멈춘다. 그리고 예전처럼 생각한다. 이 술은 어떤 이야기를 남길까. 블로그를 시작한 이후로 술은 더 이상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내 하루를 돌아보게 만드는 장치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다.
이 블로그는 술 전문가의 공간도, 화려한 시음 노트의 집합도 아니다. 첫잔의 감정, 술과 함께했던 순간,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공간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그런 첫잔이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한 번쯤 기록해보는 건 어떨까. 술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